주말 영풍문고에 들렀다가 김성근 감독님의 에세이가 있길래 그 앞에 멈춰서서 후루룩 읽게 되었습니다.
90년대 후반, 아파야 청춘이며, 열심히 사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에 각광 받던 이야기들이 야구 외길 장인의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앞을 보고 전진해야 한다."
"멈춰선 안된다."
"지금 이 순간도 미래를 향해야 한다."
"리더는 어떤 순간에도 방법을 찾아야하고, 사명감은 기본 탑재해야 한다."
"그것이 리더고, 그것이 숙명이다."
"바위로 시작한 사람들도 갈리고 갈려 바다에 도착할 때 쯤엔 고운 모래가 된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인생은 파울의 연속이었지만, 끈질기게 다음 기회를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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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감독님을 좋아합니다.
태생부터 LG 트윈스 팬이었고 '신바람 야구'라는, '자율야구'라는 LG 트윈스의 모토와는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이 분의 야구 철학을 가족들 몰래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샤이 김성근 팬이랄까요.
이 분이 좋은 이유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승부에 임하는 자세가 누구보다 커 보인다는 그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방법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지요.
나이가 40대가 되고, 조직에서도 리더가 되어보니, 이 분의 행적들이 모두 이해가 되고 한 편으론 경외심까지 들더군요. 참 멋진 리더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에서 20대 인턴 친구의 책상에 이 에세이가 꽂혀 있는 걸 보고 물었습니다.
"이 책 재밌어요?"
"네!"
"왜 재밌어요?"
"솔직해서요. 열심히 안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사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 내리는 사람들.
조용한 퇴사를 행하며
병풍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자세를 깔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분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 하나쯤은 생겨납니다.
정말 후회 없이 무언가에 나를 쏟아 본 적이 있던가?
'열심히'의 문제를 떠나서,
나는 나를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건가?
내 취향에 대해 나는 이해 해보려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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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생각했던 멋진 어른은 쿨한 모습의 어른이었습니다.
지금 멈춰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는 쿨한 어른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멋진 시니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성근 감독님을 닮은 멋진 시니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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