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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맞아서 오랜 벗이 재직 중인 대학교에 놀러갔다.
친구네서 일박 후 같이 스쿨버스에 올라 직장 동료들과 가볍게 눈인사를 하는 친구 옆에서 자는 척을 하다가 살포시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그 학교 본관 앞이었다. 친구는 사무실로 가고, 난 커피를 한 잔 사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졸음을 쫓아줄 책이 필요해서 도서관을 기웃 거리다가, 지금은 생사 여부도 알 수 없는 예전 애인의 책장에 꽂혀있던 피천득의 인연을 뽑아 들곤 읽기 시작했다. 인연이라는 작품은 교과서에서 접해서 알고 있었는데, 다른 것들은 어떠한지 궁금했다.
인생의 처음과 끝을 5월로 장식한 분 답게 봄에 대한 찬사들이 책의 전반부에 따스하게 녹아있었다.
피천득은 봄을 무척이나 사랑했나보다. 그 추운 1월부터 봄으로 생각해도 좋다고 하다니.
매 에피소드들의 끝맺음이 무척 맛스러웠다. 광고 카피를 쓸 때는 말맛이 좋아야 한다고 하는데, 수필에도 그런 것이 있다면 피천득은 그 맛을 무척 잘 살리는 것 같았다. 물론 시작이 멋스러운 작품도 많았다.
인연을 읽으면서 두 구절에선 읽기를 잠시 중단하고 감정을 다스리는데 힘을 쏟았으며,
그 두 구절의 힘은 나로 하여금 하루 내 감정이 충만해지게 만들고야 말았다.
수필은 굉장한 '공감의 힘'을 갖는 것 같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 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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