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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시퀀스가 택시에서 바라보는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한 여자가 중얼중얼 노래를 부르며 시작되는 조성희 감독님의 장편 데뷔작 '짐승의 끝'. 영화는 그의 전작인 '남매의 집'과 마찬가지로 박해일(이방인)이 택시에 합승(자신과 택시기사만의 공간에 침입)하며 시작됩니다.
보는 내내 관객을 긴장시켰던 조성희 감독님의 능수능란한 연출은 장편에 와서 살짝 늘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조성희 감독은 인터뷰에서 "우선 넉넉하게 찍어두고, 편집 때 승부를 보자라는 생각에 찍어뒀던 것들이 도저히 편집으로 만질 수 없는 수준이 되어 살짝 늘어지게 되었음을 인정합니다."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아마도 공간이 폐쇄적인 허름한 집에서 광활한 풍경이 펼쳐지는 개장적인 공간으로 옮겨진 것도 거기에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고작 사다리 타기를 해서 자신의 아이를 잉태할 몸을 고르는 신을 연기한 박해일은 전작인 '연애의 목적'에서의 모습을 간간히 보여주며 멋진 연기를 펼칩니다. 감독님도 '연애의 목적'에서의 박해일씨 모습을 기대했다고 하시더군요.
신의 자식을 잉태한, 역사상 가장 처절한 마리아를 연기한 이민지 양은 신인답지 않게 풋풋하지만 '맛을 잘 살리는' 연기를 펼칩니다. 거절못하고, 바보같이 퍼주기만 하던 그녀가 세상의 종말, 그 혼돈 속에서 변해가며 후반부 악을 쓰는 장면에서는 굉장히 불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관객 입장에서 몰입하게 되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치매와 중풍에 허덕이는 노모를 부양하며 40평생을 살아온 남자를 연기한 유승목씨는 극의 안정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제공하는 연기를 펼칩니다. 서울에서 부산에 사는 형을 찾아 걸어가던 남자의 가방을 강탈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지요.
세상의 종말을 맞아 미쳐가는 짐승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녀는 점차 변해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든, 뱃 속의 아이를 위해서든. 그녀의 두 세 발자국 밖에서 도우려는 박해일의 목소리는 그녀의 의지와 어긋나기만 하고, 결정적인 순간엔 모습을 드러내어 그녀의 목숨을 구합니다. 그녀의 배 속에 있는 그의 아이를 위해서.
나루토소년을 연기한 박세종군은 남매의 집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대사 톤을 유지하며 더욱 더 '긴장감 넘치는 얼굴'을 갖추어 성장했습니다. 그의 연기 필모그래피가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가 됩니다.
황량하고 거친 이 영화는 조성희 감독님의 연출의도에 얼마나 부합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조성희 감독님이 장편 영화 첫 연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는 열정과 A급 배우들의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득이 될 것이며, 긴 호흡에 적응하지 못하는 군데 군데의 모습들은 실이 될 테지요.
물론 '실'이라는 건 미래에 더 큰 '득'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클 것 입니다.
이 정도 열정과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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