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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영원한 사랑은 죽음으로 밖에 증명할 수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드레 고르(84)씨가 2007년 9월 25일 자신의 아내와 동반 자살했다.

인도에서 뜨거운 태양으로 노랗게 달궈진 대지의 열기에 잠을 깨서 처음 접한 뉴스 기사가 이 비보였다.

사실 그가 어떤 철학자며, 무슨 책을 집필했는지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의 사상이 오른쪽에 있지 않았다는 건 알게 됐다.

사실 그런 것들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들은 젊어서부터 뜨거운 사랑을 했다.


내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청년이었던 고르는 활발하고 긍정적인 도린에게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늘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며 인생을 직접 산 게 아니라, 멀리서 관찰만 해온 나를 자기 긍정의 세계로 이끌어 준 것은  도린이었다."


그 둘은 1949년에 결혼한 뒤, 도린은 고르의 가장 소중한 동반자이자 조언자 역할을 했다.

고르가 회의에 빠지고 자신감을 잃을 때마다 "당신 삶의 목적은 글을 쓰고 철학을 하는 데 있어요"

라며 고르를 내조하며 살던 도린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도린이 거미막염이라는 불치병이 걸렸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수술과 입원을 여러 번 거쳤으나. 도린의 몸은 약해져만 갔고 결국 고르는 도린과 함께 집에서 남은 삶을 살기로 결

심하고 은퇴한 뒤, 24년간 그녀를 간호하며 글을 쓰고 살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내 앞에 있는 당신에게 온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내게 당신의 삶 전부와 당신의 전부를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동안, 나도 당신에게 내 전부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D에게 보낸 편지-어느 사랑의 역사,2006>은 고르가 도린을 간호하며 그녀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증명하는 자서

전이다.


그는 결국 고통에 괴로워 하는 그녀를 보지 못하고, 유서를 남기고 약물를 이용해서 동반 자살을 한다.

영원한 사랑을 죽음으로 증명이라도 하듯.

"당신의 나이 이제 82살, 여전히 나에겐 아름답고 우아하고 탐스러운 여인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온 58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바로 지금 당신을 더욱 사랑합니다.

내 가슴 속에는 오직 나를 감싸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빈자리가 있었지요.매번 새롭게 당신과 사랑에 빠지며 그 빈자리가 줄어들고 있네요.

가끔 밤에 나는 황량한 풍경 속에 텅빈 거리를 걷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봅니다. 당신의 영구차를 따라 걷고 있는 바로 내 모습입니다. 나는 당신이 화장되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아요. 당신의 재가 든 단지를 받아들고 싶지 않습니다.

캐스린 페어리의 노래가 들리네요.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 하네.'

그렇게 나는 꿈에서 깨어납니다. 옆에 잠든 당신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 내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 봅니다.

우리 둘다, 한 쪽이 먼저 죽는다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종종 말하곤 했듯이 기적이 일어나, 우리가 또 한번의 인생을 살게 된다면 그 때도 반드시 둘이 함께이기를."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