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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ow Must Go On/Light Note

왜 그 작은 나라는 미국을 침공했을까? - 약소국 그랜드펜윅의 뉴욕 침공기 외




의심할 바 없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 그런 미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나라가 있다. 게다가 그들의 목적은 전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가능한 한 빨리 지는 것이란다. 우리나라의 의암댐만 한 작은 나라, 바로 그랜드 펜윅 공국 얘기다.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세계 최고의 와인을 생산해 수출하던 이 나라에 사상 최악의 위기가 닥쳐온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인구가 4,000명에서 무려 6,000명으로 급증해서 와인 수출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의회는 와인에 물을 타서 생산량을 늘리자는 ‘희석당’과 이에 반대하는 ‘반(反)희석당’으로 대립한다. 결국 어린 나이에 공국의 제위를 물려받은 글로리아나 12세 대공녀는 고심 끝에 “자기네와 전쟁을 해서 패전한 나라에 온갖 선물과 원조를 아끼지 않는 이상한 나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기로 결정한다.

 미국을 침공했다가 재빨리 항복해 패전국이 됨으로써 막대한 구호물자를 받아 챙기자는 묘안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약소국의 전쟁 선포에 코웃음을 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랜드 펜윅 원정부대는 중세 갑옷과 활로 무장하고 낡은 범선 위에 올라타 뉴욕으로 향한다.

이미 눈치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랜드 펜윅 공국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작가 래너드 위벌 리가 쓴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속 가상의 나라이다.

 1959년, <핑크 팬더> 시리즈로 유명한 코미디 배우 피터 샐러스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이 책은, 1955년 출간 당시 ‘최고의 정치 풍자 소설’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놀라운 것은 반세기도 전에 쓰인 이 소설이 지금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약소국가를 짓밟는 미국. 철저히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면서 평화의 파수꾼을 자처한다. 한미관계에서도 굴욕적인 외교, 안보 문제가 망령처럼 우리를 괴롭힌다. 현실에서는 그 불합리와 맞서 이겨낸 일도 거의 없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다르다. 얼떨결에 그랜드 펜윅이 전쟁에 이기면서 강력한 핵무기를 포획하자, 힘의 관계는 단숨에 뒤바꾼다. 오만한 미국이 그 작은 나라에 벌벌 떨게 된 것이다. 그랜드 펜윅은 갑작스레 얻은 권력을 그야말로 세계평화에 쏟는다.

아직도 선의의 승리를 꿈꾼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 선한 의지를 믿는 현대인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따끔하게 꼬집는, 특유의 통쾌함은 계속 이어진다. 군주가 얼떨결에 미국 증권계의 거물이 된다는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한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월스트리트 공략기>, 1960년대 우주경쟁이 살벌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자국의 힘을 과시하는 강대국을 코믹하게 그려낸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 세계인을 석유에 의존하게 만들고 이익을 독식하는 이들을 풍자한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석유시장 쟁탈기>까지.

 블로거들에게서 쏟아지는 리뷰를 통해서도 이 신선한 바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퀴즈. 그랜드 펜윅과 바티칸 시국 중 어느 나라가 더 작을까? 한 포털 사이트에 실제로 올라와 있는 질문이다. 바티칸 시국의 영토는 0.44제곱킬로미터, 그랜드 펜윅 공국은 40제곱킬로미터로, 그랜드 펜윅이 훨씬 크다. 문제는 그랜드 펜윅에는 가볼 수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