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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ow Must Go On/Film

남매의 집 + 짐승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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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끝 상세보기


영상자료원에서 패기 넘치는 신인 감독들의 단편과 장편을 묶어서 상영하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후두둑 후두둑, 장마가 시작 될 무렵, 남매의 집이라는 단편을 무척 감명 깊게 보았던, 조성희 감독님의 남매의 집 + 짐승의 끝을 보러 무려 동성친구 두 명과 가게 되었습니다.

칸 영화제의 뒷통수를 시원하게 치고, 몇 년간 공석이었던 미장센 영화제 대상의 자리를 차지한 남매의 집은 다시봐도 명작이었습니다. 고립되고 단절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할 수 있는지를 종말이라는 배경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단편고는 긴 30분 가량의 러닝타임 내내 보는 이들을 괴롭힙니다.

어린 남매가 살고 있는 집. 여동생이 그린 그림으로 유추컨데, 지구는 이미 외계인에 의해 정복당해서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 집 밖으로 절대 나가지말고, 빨간펜을 꼭 풀어놓으라는 아빠의 목소리는 우주의 그것과 합쳐서 존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때 찾아온 낯선 이방인, 그것도 셋. 그들이 원하는 건 실험체로 사용할 어린 여동생.
슈퍼 히어로의 옷을 입은 어린 남자 주인공은 앞 뒤 가리지 않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낯선 침입자들에게 미약한 반항 끝에 무기력한 체념을 하며 자신의 생명과 어린 여동생을 맞바꿉니다.

탄탄한 연기와 날카롭고 가느다란 끈을 팽팽하게 달아놓은 것 같은 연출은 영화 내내 긴장감을 조성하고, 긴장감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블랙유머와 센스있는 대사들은 '낯설게 하기'는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지를 뽐내듯이 알려줍니다.

영화는 죽었던 앵무새가 그들의 주사를 맞고 살아나고, 잡혀갔던 여동생은 "차에 자리가 없대" 라고 말하며 돌아오며, 차마 여동생을 안아주지 못하는 '부끄럽고 죄책감에 빠진 남자 아이의 자아'를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이 단편을 보고 느꼈던 충격의 조성희 감독님의 장편 데뷔작을 무척이나 궁금해 했습니다.
제목부터 "짐승의 끝!". 얼마나 멋진 장편 영화가 탄생했을 것인가를 기대하며 5분 간의 휴식을 갖고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종말론적 묵시록을 영화에 담아낸 '짐승의 끝'은, 조성희 감독님 특유의 "낯설게 하기" 기법과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여전히 살아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폐쇄된 공간이었던 남매의 집과 달리 짐승의 끝은 광활한 시골 벌판이 무대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 되었습니다.

극 중 신(절대자)를 연기한 박해일의 대사처리 능력은 역할에 깔끔하게 들어맞았고, 세상의 종말에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하는 무책임한 신의 모습을 멋지게 연기해냈습니다.

아 지친다. 나머지는 추후에 마저 올리도록 하지요.